본문 바로가기

묵상

냉담이라는 말로 신자 탓만 할게아니다.

 

     이월 보름 밤의 달, 앵커리지, 우리 집문 앞에서

 

냉담자였다가 성당에 다시 나오려면 그 동안 밀렸던 교무금을 다 발려 내야한다.

전화국을 옮기려고 신청을 하니,

먼저번 미납금이 적체되여 있어 멈춰 버린 컴퓨터의 진행을 위해 잔금을 치루긴 했지만,

그땟 날의 잘못은 분명 전화국에 있었다.

누누히 시비 걸기도 못해서 다른 곳으로 행보를 한 후 돌아 와 보니 생긴 현실이였다.

돈 장사하는 놈들이니까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새로 온 본당신부가 만든 규칙도 그리 되여 있었다.

먼젓 날, 성당을 분탕질하고 떠난 신부는 교무금을 안 내면 법적인 절차를 받도록 하겠다고

천주교회법을 들어가며 연 삼주를 공갈치더니,

이번 신부는,

교무금을 적어도 이년치는 내야만 성당에서 장례를 치룰 수 있다고 성문법을 만들었다.

맘 돌려 먹을가하다가 꾀씸한 생각이 들어 다시 몸이 뒤 돌아 섰는데,

 

장가들을 안가서 그런가?

하여간에 나이는 먹었어도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유치한 놈들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붉은 귀신한테도 벌벌떠는 우리나라사람들인데,

감히, 하느님 전에 올릴 봉헌을 왜 마다하고 지내게 되었는가를 생각들 좀 하셨으면한다.

돌아 온 탕아는 성경에 있는 얘기에 불과한 것일가?

밀린 교무금 내지 않고 하늘나라 가기가 여의치 않은 현실이 우리 성당에 생겼다.

 

냉담이라는 말이 맞다고 하자.

그 냉담의 원인제공은 교회에 있는 것을 어찌 그들 신자의 부족으로만 치부하고 마는지...,

늘 '내 탓'이라 하는 희생양의 소리가 가증스럽게 들린다.

냉담자를 회두시키는 봉사보다도,

갖잖은 짓을 하고 있는 자신들을 반성하는게 우선일 것이다.

고해성사니하는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요식적이고,형식적으로 만든 참회를 읖조리기 보다는,

뭣인가 본을 보여야 하잖는가?

 

주님처럼 대접을 받고 싶으면 싶은만큼,

산상에 오르시어 말씀을 주신 것이 못한 이를 위한 소리였음에 비하여,

더 열심이어야 할텐데,

당신들을 추종치 못하는 이들을 냉담으로 싸잡아 버리다니.

먼저번 신부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전에 명함도 못 내밀거라는 강론의 첫마디에

난 "개놈"하며 그 자리를 떠 나왔다.

 

허지만, 이들 속마져 검은 듯한 무리들은 서로를 감싸기만 했지,

결코 오늘 날에 이르도록 우리 신자들에게 잘못을 인정않고 있다.

현 정권의 통수권자를 부정하는 정구사 애들 몬양,

그땟 날의 어리석은 신부를 탄하려고 한 적은 없다.

다만, 진솔한 자신의 우둔했던 과오를 인정만 해줄 것을 우린 원해었다.

그리고, 다음의 본당 신부들은 그러한 잘못을 인정해 주리라 생각했고,

허지만 그런 분은 아직 껏 없었다.

보고, 배운 것이

거짓을 합심해서 덮어버리는 집단의 일원들 뿐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난 소설이나 영화속의 감명깊었던 성직자들을 이들로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사람들의 맘속에 있는 그러한 인물들이 현실이기를 난 늘 빌지만,

 

허긴, 길 잃은 양이 아니라 도망 간 놈으로 치는게 뱃속은 편할거다.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의 새끼  (0) 2014.06.29
무지개를 꽂아 놓으시곤...,  (0) 2014.06.23
내 맘속에 당신이 보입니까?  (0) 2013.07.02
배려하는 맘.  (0) 2013.06.11
끝자리에 앉아라.  (0) 2012.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