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손주에게 남겨야 할 것들

중딩교향악단으로 하여금,

감명을 주는 노래가 꼭 서양의 고전음악만은 아닐 것입니다, 요즈음은 늘 내 나라 가수의 능청스럽고 애절한 가락에 흥그럽게 지나는 때가 더  많씀니다. 허긴 몇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가...? 그러구 보면 이해하기에 너무 먼 것들을 커피향을 음미하며 귀 기울였던 내 젊은 날들이 참 쫌시럽게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한자 말이며, 잘 굴러 나오지도 않는 오랑케들 말을 끄집어 내어 내 모습에 힘을 주었던 옜날을 모두 순간적으로 삭제하고 싶을 때가 많기도 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으로 접하는 생소치도 않은 낱말들을 꼭 그렇게 선별해서 써야 하는 저 젊은 양심들이 나 모양 늙으막하게 후회스런 소릴 할수 있을가? 그럴것 같지는 않다, 왜냐면 왕따의 험난 한 길을 구태여 택할 만큼 잘난 님들이 아닌 듯싶으니...'

좋은 결과를 위해서였지만 올바르지 않은 시작과 과정을 지나 왔던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을 변명해도 그들의 수렁을 헤여 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고 있습니까. 물론 서로의 과오를 용서하기 보다는 변명의 구실로 삼으므로서 나아짐이 없이 진행 되고 있는 것 같아 맘이 더욱 불편합니다.

이곳 학생들에게 졸업이 시작되는 늦봄이 되면 그동안 배웠던 것들의 마금을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힘들게, 힘들게 지나온 이들 꼬마의 업적이 내 눈에는 별스럽지 않아도 부모나 선생제씨 모두에게는 요란스러운가 봅니다. 그들의 흥분스런 모습이, 그 별 것이 아닌 것들이 자꾸 반복되다보니 끝내는 나도 두근거리게 되더이다. 

언제가 중학교에서 일입니다. 내 집사람만큼 작은 음악 여선생님이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중딩오케스트라의 발표준비를 혼자 도맡아 하는 것을 보니 남녀평등을 실천하며 프로근성이 있는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칭찬이 절로 나오더군요. 시간에 앞서 모인 단원들이 발표곡을 맞추려는 것을 보고 강당문을 나서는데  '아리랑'의 변주가 시작이 되더군요.

틀림없이 프로근성의 소유자인만큼 차거운 모습의 외국여선생님이 선택한 첫 발표곡이 그거 였습니다.....               

그땟 날, 내 가슴의 흔들림은...!

지금까지도 그때의 중딩오케스트라와 그 여선생의 지휘를 넘어선 감흥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어린 날의 불쾌한 것들 중에는 피아노며, 관현악기나 값나가는 것들을 배우는 애들, 그리고 그 주윗 사람들이 많씀니다.

그러니까, 없는 자에게는 너무 멀기만 했던 그 소리들을

이 여선생님을 거쳐 좀은 달리 들려 주신 그 섭리에 가슴은 뭉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