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오시어 모든 이가 차별이 없음을 알게 하시었읍니다. 이에 하느님 모시기들이 한결 열심이였나 봅니다. 그렇지도 못한 일이 있어 오늘날에 신교 이야기도 생겼겠죠. 어쨌거나 주님을 외쳐되니 그들을 나무램 없이 지나게 하는 것 일 겝니다.
해서 이백년전에 우리 선열님들께 상상할 수도 없는 고난이 있었고, 그리해 많은 분의 치명이 오늘 날 우리 천주님을 향한 후진에게 힘이 되고 있다는데, 왜 그때 그분들이 그럴 수 있었을가 하는 연유들을 생각 해보면 그냥 제 의견이 더 맞을 것 같아 해 보는 이야기입니다.
1700년대에 들어 서면서 미국에서 노예들의 탈출이 시작됩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잠깐, 잠깐 민란이 소개되기도 하고, 사전에 봉쇄된 이야기도 있읍니다. 외세에 의존하여 거세되고 만 동학난등이 그 예가 되겠죠. 물론 노예를 중인들에 빗데어 얘기하는냐 하시겠지만 ,글자 그대로 '반상'이라는 말에서 민초가 들어 갈 사이가 어디 있었읍니까? 그냥 나랏님이라는 허울로 연계되어 있던 지배계급인 양반들의 존위를 유지시키 위한 방법인 쌍놈의 설정으로 평민들을 옥 재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기요?
아무튼 성령님의 말씀에 들을 귀들이 열리고, 이에 대한 실천이 행하여 질 시기가 그 때였을 겁니다. 주님이 사람으로 오시어 잘 난 자들에게만 임한다는 하느님의 나라가 만인의 것이라는 진실이 알려 지면서, 그 잘 난 자들의 혼돈이 만들어 낸 고난의 십자가가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으로 바뀌면서 이 은둔의 나라에 이르는데...
생긴데로 태여나 살아 가는 인생에 그게 아닐 것이라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절,어느 곳에서나 있었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선열님들 만큼 주님의 뜻에 살아 갔을 무리가 있었을가 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읍니다, 그것도 정말 마음이 콩닥,콩닥뛰면서 주님의 길을 가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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